오늘은 독일어로 취업하는 여정에 대해 쓰고자 한다.
사실 정말 쉽지 않다.
일단 오스트리아의 중소도시를 기준으로 독일어를 마스터(!!) 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큰 난제일 것이다.
독일어가 기본적으로 복잡하고 가끔 논리없이 바뀌는 규칙에 머리아픈 것도 맞지만 
오스트리아에 살고자 하는 외국인이라면 사투리에 대한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다.
오스트리아의 독일어는 기본적으로 독일식 독일어와 꽤 차이가 난다.
그래도 Hochdeutsch는 상당히 유사하므로 독일식 독일어를 꽤 한다면 빈의 젊은이들과는 나름대로 쉽게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주에 있는 도시를 간다면, 나이드신 분들과 대화를 해본다면, 아니면 어디 예쁜 산골마을이라도 간다면...
지금까지 독일어를 죽어라 배워온 세월이 사라져버리고 갓 공항에서 내린 토종한국인이 되는 경험을 하게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처음에 오스트리아에 와서 독일어를 배우기가 너무 싫었다.
 
한국 독일어 책에서 가르치는 독일어는 대부분 독일식이다.
당연하다.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쓴다는 사실도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데 
누가 오스트리아식 독일어를 배우고자 하겠는가.
 
그래서 기초 독일어 책에서 애쓰고 배워온 표현은 이곳에선 아무도 쓰지 않고, 내가 말하면 윽, 그건 독일식 독일어잖아! 하는 반응을 볼 수 있다.
사투리를 배우는 방법은 단 하나, 맨땅에 헤딩이다.
오늘은 내가 어떻게 독일어를 배우게 되었나를 적어보고자 한다.
 
난 독일어로 인사말을 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일을 시작했다.
첫 일자리는 집 근처 빵집이었는데, 면접도 자신이 없어서 남자친구랑 같이 갔다.
새벽출근은 진짜 빡셌지만 그래도 빵 이름 열심히 외우고 사람들이 물건 살 때도 팁을 준다는 사실도 배웠다.
(빵집 주인이 노동청에 외국인 노동자 신고를 안하는 바람에 두달만에 짤렸지만... ㅎ 아직도 그 빵집 가면 주인이 눈을 흘긴다)
 
두번째 일자리는 집 근처 식당이었다.
우연히 저녁식사를 위해 들른 식당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을 듣고 내 남자친구가 나를 팔았다.
영어만 해도 된다는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진 식당 주인 타냐와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자전거로 기나긴 오르막을 오르면 주변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식당에 도착한다.
식당에 온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술을 마셔서 그런건지, 원래 그런 성격인지
내가 외국인으로 보이니까 더욱더 말을 걸고 싶어 안달이다.
그렇게 여러번 나를 소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간단한 문장들을 익히게 되었다.
 
특히 여기서 사투리가 많이 늘었다. 식당 일하는 사람들이랑도 대화하고 손님들이 요청하는 것들도 다 사투리이다보니 생존을 위해서는 꼭 배웠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에 다들 너무 즐거워했다. ㅋㅋ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한번 지어주면 다같이 한바탕 웃고 다시 표준말로 해주니까 빠르게 단어랑 듣기실력이 늘었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는 진상이 없어서 서비스직할 맛이 나는 것 같다.
 
그렇게 여기서도 두 달 정도 일했는데, 식당 일을 구하기 전에 지원서를 넣어놨던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원하는 부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월급도 훨씬 높고 대기업 사무직이라 무조건 간다고 했다.
두번의 영어 면접을 보고 집근처 화학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우리 부서에서는 나랑 같이 있을 땐 영어로 대화를 해줬지만
다른 사람이 끼면 무조건 독일어로 전환이었다. 독일어로 전환할 때 우리팀원들이 미안해하는 게 너무 느껴져서 불편했다.
독일어로 대화하고 싶어! 해도 막상 못 알아듣고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앉아만 있는게 힘들었다. 
일 자체는 아주 편했다. 사실은 너무 편했다. 
투자자본 구매 부서였는데, 경기도 안좋고 해외에서 뭘 사다나르기도 어려워서 그냥 올스탑이었다.
특히 그 일 자체가 다른 팀이나 공급사하고 협상하고 대화해야하는 일인데 내 성격이랑 너무 안맞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12개월의 인턴이었지만 정책변경으로 9개월 간의 인턴십을 마치고 암흑기가 시작된다...
 
오스트리아의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다음 일자리는... 마트다!
난 한국에서 편의점 알바를 해봤기에 마트도 당연히 할 수 있지, 하는 마음에 집 근처 마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근데 생각보다 엄청 빡셌다. 일단 일의 강도도 높고 (쉬는 시간 제외 앉을 수 없음) 소통이 매우매우 중요하며 (무전기로 말하고 알아듣기 넘 힘듦) 금토에 몰리는 개인일정은 거의 못간다고 보면 된다. 
근데 다 차처하고 그냥 여기서의 일은 악몽이었다. 출근길은 걸어서 8분정도 걸렸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무서워서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오늘은 또 어떤 일로 피드백 받고 까일까 걱정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거기서 일 못하는 사람이었다.
울면서 퇴근하는 날이 수도 없이 많았고, 확신의 T였던 내가 좀만 슬픈 일이 있어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으로 변하게 됐다.
누가 조금만 위로해줘도 그냥 눈물이 차오르고, 특히 매니저가 나를 부르면 그냥 손발에 피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매니저 환청도 들은 것 같다...
 
집에와서 유튜브로 일 못하는 사람 특징, 고치는 법, 일잘러 되는 법을 매일같이 봤던 것 같다.
그마저도 3개월이 되니 적응이 되고 이제 좀 살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상급 매니저가 날 부르더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란다. 
그날 일 마치고 바로 아는 부부와 저녁약속이 있었는데 운 흔적을 지우느라 애썼다.
너무 억울하고 더 잘 할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절반, 나머지는 그냥 너무 후련했다. 더이상 그 지옥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근데 그 후련한 마음도 잠시, 그 이후로 난 인생 최악의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나의 암흑기는 바로 우울과 무기력이었다.
원래도 기력이 많은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심심하면 혼자서 싸돌아다니는 성격이다.
근데 이때 그렇게 짤리고 나니 그냥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된 것 같고, 나는 진짜 일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내가 석사까지 졸업해놓고 이깟 마트일도 못하는데 앞으로 대체 뭘할 수 있나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매니저한테 받은 피드백과 매니저의 성난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날 옥죄였던 것 같다.
특히 내 눈앞에다 대고 '너가 말귀를 못알아들으면 진짜 짜증나' 하는 말, 그리고 거기에 대고 멋쩍게 웃었던 나의 환장의 콤보...
그냥 그때만 떠올리면서 내가 앞으로 뭘 할지, 무엇이 잘 맞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난 그냥 2년반이 지났고, 석사도 땄고, 여기서 일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독일어를 아직도 못하는, 말하자면 몸만 커져버린 바보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실업급여 신청대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짜 다행스럽게도 지급기준이 만약 지난 2년동안 50주 근로라면 내가 잘린 날짜까지 딱 50주일한 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 받던 급여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만큼을 받으면서 일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가끔가다가 몇개 지원해봐도 득달같이 돌아오는 거절 메일에 지쳐가고 휴대폰 중독에 빠졌다.
그러다가 알게된 FrauenBerufsZentrum...
 
처음 받은 메일은 직업관련해서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근데 여성 일자리 센터라니... 왠지 자존심 상했고 그곳에서 내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첫 면담자리에 가서 폴란드인 트레이너를 만났다. 그런데 나의 상황을 들어보더니 젊고, 아이도 없고, 여기서 대학원 교육까지 마친 너무 좋은 상황이라며 아주 놀라워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도 놀랐다. 주변에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남자친구의 지인들밖에 없다보니 주변엔 다들 번듯한 직장인밖에 없어서 더 위축되곤 했는데, 이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니까 갑자기 눈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매주 3회씩 4달간 진행되는 세미나에 나가게 됐다. 
 
이 세미나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딱히 뭘 생산적인 일을 하지는 않지만 그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소중하다. 아직 나는 그 세미나에 나가고 있다. 직업 전반과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음과 동시에 일부는 3일짜리 인턴십인 Schnuppertage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 세미나를 계기로 원하는 교육과정을 찾아 교육을 들으러 가기도 한다.
특히 태국인 파니다를 알게 된 것은 참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파니다는 현재는 세미나에 오지 않지만 교육수준이 높고 자국에서 SAP 컨설팅 경력도 10년 넘게 쌓은 인재였다.
그런데 독일어를 못한다는 이유, 작은 아이를 케어해야한다는 조건 때문에 거의 1년 넘게 일을 못 찾고 있었다. 
난 내가 회계법인과 그외 거의 모든 분야에서 SAP 컨설팅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케이스가 더욱 의아했다. 파니다는 이 세미나를 계기로 무료 독일어 수업을 들었고,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종종 영어단어를 쓰긴 하지만 애초에 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남이 하는 말 잘 들어주고. 그게 다 아닌가?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오스트리아는 이렇게 독일어가 중요하다.
나도 이 세미나를 들으면서 독일어를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됐다.
실제로 자소서를 수도없이 쓰고 면접 답변을 준비하면서 독일어 말하기가 겨우 늘었다.
마트에서 일할때까지만 해도 원하는 말을 못했었는데, 그 2-3개월만에 훌쩍 늘었다.
근데 그 과정이 너무 자괴감이 들고 고통스럽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마음에 매일같이 나를 다잡아야 했다.
 
취업해서 성공후기를 쓰고 싶지만 그렇지 않고 미리 써버리는 이유는 하나다.
고통이 있으면 한발짝 나아간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람은 고통을 받으면 뇌가소성이 증가해서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난 지난 3-4개월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비로소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3년동안 안 늘던 말하기 실력을 3개월만에 늘릴 수 있었고,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기연민에서 다른 사람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아직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지만,
나의 목표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난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 실패해도 실패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
여러번의 좌절에도 그 다음 것은 해내는 사람.
모든 실수도 괜찮고, 모든 일은 일어나도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배울 수만 있다면, 모든 잘못이 그저 괜찮은 것이다...
오늘 쓴 슬픈이야기가 다음번엔 웃픈이야기가 되기를.


수정: 지금은 세무사 사무실에 취직했다. 회계쪽은 수요가 엄청 많으니 독일어 쫌 되고 (B2-C1) WIFI 회계 1, 2만 듣고나서 바로 취업 된다. 다시 읽어봤는데 아직 웃프다기보단 걍 너무 힘들었어서 비슷한 처지에 있을 다른 외노자 한국인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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